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워싱턴 위저즈 (문단 편집) === 잠깐의 중흥기 === 2001년 오프시즌 때 조던 사장은 해밀턴 감독 대신 시카고 때 자신과 인연이 있던 덕 콜린스 NBC 해설위원을 새 감독으로 불렀다. 드래프트에서 글린 아카데미 출신 [[콰미 브라운]]을 전체 1번으로 뽑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레이커스에서 FA로 풀린 타이론 루를 영입한 후, 올랜도 매직이 지닌 신인 브렌드 헤이우드를 얻고자 라론 프로핏 및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팔았다. 9월에는 조던이 리그의 프런트 겸업금지 정책에 따라 사장직을 내려놓은 채 선수로 컴백을 선언했다. 다른 한편 리치몬드는 FA로 풀려 레이커스로 떠났고, 보트와 마이크 스미스 둘은 방출됐다. 조던이 복귀한 첫 정규시즌에선 빈약한 로스터를 가지고도 37승 45패로 성적을 올렸는데, 비록 5할을 찍는 데 실패했으나 바로 전 시즌 19승을 거두던 팀이 조던이 뛰던 2년동안 각각 37승을 거두면서 성적이 거의 두 배로 뛰었다. 2002년 드래프트에서 인디애나대 출신 재러드 제프리스를 11번, 메릴랜드대 우승멤버 후안 딕슨을 17번,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바스케트의 선수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를 43번으로 각각 뽑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해밀턴 및 허버트 데이비스를 디트로이트의 제리 스택하우스랑 맞바꾸는가 하면, 노장 찰스 오클리와 유타 재즈의 주전 브라이언 러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래리 휴즈 등 3명을 FA로 영입했다. 정규시즌 들어 조던이 40대의 나이에 40득점을 찍고, 카림 압둘자바의 올스타 통산 득점 251점을 뛰어넘는 등의 활약을 했지만 최종 성적은 전 시즌과 똑같았다. 이 과정에서 공 소유권 독점, 스택하우스와의 갈등, 독불장군식 스타일 등의 그림자도 있었다. 다만 이런 비판 대부분은 조던의 대외적 이미지와 다른 선수들의 불평으로 인한 오해에 가까웠다. 제리 스택하우스의 불평으로 인해 조던이 볼을 독점했다는 오해가 있지만, 스택하우스의 야투시도는 위저즈에 합류하기 전과 거의 혼자서 공격하던 피스톤즈 시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17.4개->17.2개) 리처드 해밀턴은 오히려 조던과 뛸 때 커리어에서 가장 야투를 많이 쐈다.(17.2개) 스택하우스는 조던이 은퇴하고 길버트 아레나스 합류 이후 야투시도가 오히려 12개대로 폭락했다. 애초에 다른 팀이나 선수들하고 뛸 때만큼 많이 쐈는데 '볼을 독점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비판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애초에 NBA수준에서 제대로 득점할 수 있는 기량도 없었으며, '독불장군식'이란 비판에 대해선 훗날 당시 위저즈에서 뛰던 이탄 토마스가 선수들을 갈군 것은 조던이 아닌 [[찰스 오클리]]라고 증언한 바도 있다. 당시 위저즈는 세대간 갈등이 심한 편이었는데, 조던의 고압적 이미지와 스택하우스의 발언 때문에 조던이 독박을 쓴 것에 가깝다. 마이클 조던 항목에도 설명되었다시피 조던은 굉장히 가혹한 리더 스타일이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정도이며 그와 사이가 안 좋았던 [[룩 롱리]]조차도 그가 나쁜 리더였다고 하진 않는다. 이렇게 바닥에서 헤메던 팀이 조던 한명의 합류로 플레이오프에 거의 진출할 뻔한, 동부에서 중간은 가는 팀이 된 것이다. 조던 본인의 명성에 미친 악영향을 떼놓고 팀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이득을 본 셈. 거기다가 조던의 인기로 인해 전국적인 관심과 전국방송+매진 행렬을 펼쳤다. 추가로 조던은 이때 베테랑 최소연봉을 받고 뛰었는데, 올스타급 선수를 겨우 연봉 백만달러 주고 2년이나 쓴 셈이다. 보통 올스타급은 천만불 이상받는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염가봉사이다.[* 강압적인 조던의 존재로 인해 유망주들이 못 컸다는 의견도 있지만, 조던탓을 하기엔 이 선수들이 보여준게 너무 없다. 타이론 루는 2001년 파이널에 아이버슨 막은게 유일하게 커리어에서 빛난 부분이고 콰미 브라운은 조던이 떠난 후 10년간 제자리걸음만 했다. 즉, 냉정히 말하면 조던탓을 할것도 없이 애초에 그 정도밖에 안되는 선수들이었다는 소리. 오히려 조던은 2002-03시즌 초반에는 식스맨을 자처했지만 동료들이 워낙 답이 없기에 주전으로 나선 것이다. 게다가 콰미 브라운은 은퇴 후 본인 입으로 조던에게 괴롭힘당했다는 것은 오해이며 오히려 찰스 오클리같은 베테랑들이 군기를 심하게 잡았다고 한 바 있다. 조던의 대외적 이미지 때문에 생긴 편견.] 어쨌든 조던도 떠나면서 다시 대중의 관심에서 줄어드는가 싶었지만, 의외로 워싱턴은 짧은 중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3년에 폴린 구단주는 언셀드 단장과 덕 콜린스 감독을 자른 후, 밀워키 벅스 단장이던 어니 그룬필드와 전 뉴저지 네츠 코치 에디 조던을 새 단장과 감독으로 앉혀 새 출발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조던이 경영진 복귀를 시도했지만 폴린 구단주 때문에 무산됐다.] 트레이드 시장에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2라운드 출신 가드 '에이전트 제로' [[길버트 아레나스]]를 FA로 영입했다. 에디 조던 감독은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코치와 감독을 하던 시절에 배운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를 팀에 이식시켜[* 전임 덕 콜린스 감독도 2002/03 시즌부터 모션 오펜스를 써먹으려 했으나, 주전들의 잦은 부상과 아이솔레이션 의존, 빅맨들의 능력 부족 등으로 실패했다.] 선수진을 새로 짰고, 부임 첫 정규시즌에선 3승 2패로 시작하다가 리더였던 스택하우스의 부상, 아레나스의 복부 근육 부상 등으로 마가 껴서 연패를 거듭해 25승 57패로 처졌다. 2004년 오프시즌 때 스택하우스, 레이트너, 데빈 해리스 3명을 댈러스의 앤트완 재미슨과 맞바꾼 뒤, 아레나스-휴즈의 원투펀치를 앞세워 정규시즌에 45승 37패를 찍어 플옵에 나가 1라운드에서 시카고를 4승 2패로 이기고, 2라운드에선 마이애미 히트를 만났지만 4전 전패를 당했다. 특히 길버트는 포인트 가드임에도 슛을 많이 던져 '길버톨로지'란 신조어를 낳았다. 2005년 오프시즌 때 콰미 브라운 및 라론 프로핏을 LA 레이커스의 캐론 버틀러 및 처키 앳킨스랑 맞바꿔서 아레나스 - 버틀러 - 재미슨의 짜임새있는 라인업을 구성했고, 드래프트에서 전체 49번으로 사우스 켄트 고교 출신 안드레이 블라체를 뽑은 뒤 베테랑 선수 안토니오 다니엘스(시애틀)와 캘빈 부스(밀워키)를 FA로 영입했다. 정규시즌에서 아레나스가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여 42승 40패를 찍어 플옵에 갔지만, 나머지 멤버들이 부실한 탓에 플옵 1라운드에서 신흥 리그의 스타로 자리잡은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2승 4패로 졌다. 2006년 드래프트에선 전체 18번으로 우크라니아인 선수 올렉세이 페체로프를 뽑았고, 올랜도 매직의 드샨 스티븐슨을 FA로 영입하는 등 전력을 강화했다. 정규시즌에서도 나름 선전했으나 후반 들어서 아레나스와 버틀러가 부상으로 누워 공격에 빵꾸가 났고, 안토니오 다니엘스도 기대와 달리 제 역할을 못했으며 수비도 빈약했다. 또한 이탄 토마스와 헤이우드가 너무 다퉈서 팀 캐미스트리를 망치기도 했다. 어쨌든 41승 41패를 찍은 후 플옵에서 클블을 또 만났지만 4전 전패를 당했다. 2007년 드래프트 때 전체 16번으로 USC 출신 닉 영을 뽑았고, 정규시즌에선 아레나스가 또 부상을 당해 12경기밖에 못 나왔음에도 버틀러의 분전에 힘입어 43승 39패로 플옵에 또 나갔지만, 재미슨의 슛 난조로 또 클블에게 2승 4패로 스윕당했다. 플옵 당시 드샨 스티븐슨이 르브론을 도발해서 다른 쪽으로 유명해졌다. 2008-09 시즌을 앞두고 FA로 풀린 아레나스는 팀과 재계약했지만, 아레나스는 너무 무리해서 2경기밖에 못 나온 데다 헤이우드가 부상당하면서 정규시즌에서 연패를 거듭했고, 2008년 12월에는 뉴올리언스 호네츠 및 멤피스 그리즐리스와 3각 트레이드를 맺어 안토니오 다니엘스를 뉴올리언스의 마이크 제임스, 드래프트 픽 1장을 멤피스의 자바리스 크리텐튼과 각각 맞바꿨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며칠 뒤 에디 조던 감독이 잘리고, 선수 인사부장 에드 탭스콧이 감독대행을 맡았음에도 19승 63패로 완전히 망쳤다. 2009년 오프시즌 때 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감독 [[플립 손더스]]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트레이드 시장에서 캐론 버틀러와 브랜든 헤이우드, 드샨 스티븐슨 3명을 댈러스의 드류 구든, 조시 하워드, 퀸틴 로스, 제임스 싱글턴 4명과 맞바꾸고, 이탄 토마스는 올렉세이 페체로프, 다리우스 송가일라, 동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과 함께 미네소타의 마이크 밀러 및 랜디 포이랑 맞바꿔가면서 팀 개혁을 단행했고, 아레나스도 건강을 회복하며 팬들의 기대심이 발휘됐다. 그러나 시즌 도중 구단주 에이브 폴린이 사망하고 에이스였던 아레나스가 라커룸에서 크리텐튼과 도박빚 문제로 다투다가 총기 반입으로 인한 사고를 제대로 치면서 팀이 더 흔들렸고, 그는 사건 뒤에도 총 쏘는 시늉을 하다가 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잔여경기 무보수/무기한 출장정지를 당했다. 2010년 2월에는 클블 및 클리퍼스랑 3각 트레이드를 맺어 재미슨을 클블의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 및 에미르 프레드지치랑 맞바꾸고, 구든도 클리퍼스의 앨 쏜튼과 맞바꾸는 등 변화를 시도했지만 26승 56패로 또 하위권에 머물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